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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전남편 사망한 동생 아버지 강씨 방 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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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전남편 영정 사진 


아들에게 줄려고 구매한 장난감 


장난감들 확대 


고유정이 살해한 전 남편 강씨의 아버지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숨진 아들 영정 사진을 모신 상에 매일 물건을 하나씩 올려 놓습니다. 숨진 아들이 쓰던 안경, 모자를 올려놓았습니다.  


유족은 아직 장례를 못 치르고 있습니다. 고유정이 강씨 시신을 심하게 훼손해 바다와 육지, 쓰레기장 등에 나눠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유족은 강씨 방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러 향을 피우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화를 나눕니다. 




강씨가 아들(6)과 함께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도 책꽂이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강씨 동생은 "형은 조카와 함께 '노루도 보러 가고, 아쿠아리움도 보러 가야지' 하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도 날려보지도 못하고 떠났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형은 아들 장난감과 옷가지, 양말까지 하나도 안 버렸다"고 했습니다.  

강씨 옷은 옷걸이 봉 하나에 걸려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동생은 "형은 9900원짜리 옷이나 유행 지난 이월 상품을 가져 왔다"며 "(매달 40만원씩 보내는) 양육비가 우선이었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최근 한 달간 블랙박스 영상을 봤는데 형은 '학교-집'만 오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꽃도 못 피워 보고 갔구나' 생각하니 서글펐다"고 했습니다.  

숨진 강씨는 연구실 일이 바빠 주말에 이벤트 회사에서 물품을 나르거나 시험 감독 아르바이트를 하며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그래도 밤새워 논문을 썼습니다. 영정 사진을 모신 상에 매일 물건이 하나씩 늘어 갑니다. 강씨 아버지는 아직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씨는 아들과 함께 '노루도 보러 가고, 아쿠아리움도 보러 가야지' 하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도 날려(돌려)보지도 못하고 떠났습니다. 아들을 그리워한 게 죄인가요? 

강씨는 참 다정한 사람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사랑했던 아들이며 동생이 제일 존경했던 사람이였습니다. 앞날도 창창했습니다.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도 여러 편 냈습니다. 중간에 유수 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있었는데 강씨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씨는 고유정에게 수차례 폭행과 폭언을 당했지만 단 한번도 고유정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유정은 돈 많은 재력가 집안입니다. 현재 이미 좋은 변호사를 고용한 상태이며, 따라서 몇십년 살다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고 가석방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이 돈의 위력입니다. 슬프지만 현재 우리시대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