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바다

한국 정치 변수 - 20대 남성과 페미니즘에 관해....

정치 탐구

작년 하반기부터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 국정수행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다들 여기저기서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언론에서도 '이영자' (20대 남성, 영남, 자영업자) 현상이라며 20대 남성의 민심 이탈을 비중있게 언급했고,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정치인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 블로그에서도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에 대해 다뤘던 적이 있구요. 

 

구체적인 수치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몇가지 여론조사 결과를 먼저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리서치뷰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2019년 3월 기준 31%로 집계되었습니다. 20대 여성의 지지율이 70%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죠. 임기 초에는 20대 남성이 무려 84%의 지지를 문재인에게 보내주었는데 말입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도 볼까요. 표본이 4000명인 갤럽 여론조사에서 2019년 4월 통합 기준으로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35%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60대 이상 남성, 60대 이상 여성 다음으로 낮은 수치입니다. 50대 남성의 지지율이 44%니까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그 아버지 세대보다도 약 10% 가량 낮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단순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년 총선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현상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켜 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는 장기적으로 20대 남성이 한국 정치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들은 정치적으로 결집되어 있는 세력이 아니고, 이들을 대변하는 제대로 된 정당도 없으며, 상대적으로 다른 세대와 계층에 비해 정치혐오 성향도 강하다고 판단합니다. 현재로선 유의미한 정치적인 세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이나 차기 대선에서는 판을 뒤집을 만한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정치에서 엄청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치의 지형 자체를 바꿔 버릴만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가장 먼저 20대 남성의 민심 이탈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으로부터 지지를 거두게 된 원인 1순위로 나는 젠더 이슈를 꼽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실망감, 고용정책 실패, 끝없는 취업난 등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단순히 그걸로는 20대 여성과의 지지율 격차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취업난은 20대 여성도 비슷하게 겪고 있거든요. 반면, 현 정부의 젠더 정책은 정확히 20대 남성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페미니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혜화역 시위, 그 시위에 대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옹호와 지지, 남초커뮤니티발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무성의한 답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한 현 정부 핵심들의 끝없는 여성우대정책, 그리고 사법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성에 대한 구조적인 역차별 생산. 이러한 변화들은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20대 남성들은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이전부터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에 경고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뿐이지요.  

 

작년 가을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그 해 9월에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1심 유죄 판결 내용이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만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판결 내용을 규탄하는 청원에 서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청와대는 삼권분립이라 답할 수 없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요. 그리고 11월에는 그 유명한 이수역 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곰탕집 사건과 이수역 폭행 사건은, 특히 이수역 폭행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임계점 (tipping point)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에 대해 "그냥 막연하게 싫다",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정도의 태도를 보였던 남성들조차도, 그 사건 이후로는 "도저히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랄까요. 대부분의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인 반감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하였고,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성향은 수치로 확인됩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6%가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응답하였고, 찬성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최근에 시사인과 한국리서치에서는 20대 남성 중에서 약 26%가 극단적인 반페미니즘 성향, 33%가 극단적이진 않으나 여전히 매우 강한 반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의 비율은, 20대 남성들이 또래들 사이에서 반페미니즘을 매개로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담론을 생산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없는 수준입니다. 4명 중에 1명은 아주 강경한 반페미니즘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주변의 1~2명은 이들과 매우 쉽게 동조합니다. 다시 말해, 20대 남성들끼리 모인 저녁식사자리나 술자리에서, 이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화는 정말로 흔한 것이 되었고, 그들의 정체성은 서로를 통해 확인되며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종류의 변화를 쉽게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아주 공고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분노는 현 정부 여당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20대 남성들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고,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정당들과는 클라스가 다른, 어나더 레벨의 페미니스트 정당이거든요. 실제로 이들이 펼치는 정책들 중에는 좌파 사회주의 언더도그마와 정체성 정치에 입각한 여성우대 정책들이 많습니다. 진선미 같은 작자들은 심심할 때마다 어그로를 끌면서 폭탄을 터뜨리고 있고, 그 화염 위에 홍익표와 설훈 같은 막말꾼들이 기름을 붓고 있기도 하지요. 바른말 한번 했다는 이유로 홍준연 구의원이 제명당하는 것도, 여가부가 국민연금에 손을 대고 여성할당제를 밀어붙이려 하는 것도, 청년 남성들은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다 보고 있습니다. 20대 남성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빠르게 온라인으로 정보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활발하게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며 포털 댓글,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온라인 담론을 주도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적으로 돌린 것은 민주당이 차후에 꽤나 뼈아프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현 정부에서 이탈한 20대 남성의 민심을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잘 받아먹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영남 지역과 자영업자 계층에서 유의미하게 지지율을 올리고 있는 것과 별개로, 자유한국당은 20대 남성층에서 지지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북 문제나 이념을 매개로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자유한국당의 전략에 20대 남성이 크게 호응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서 민심이 이탈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전부 갑자기 보수우파가 된다거나, 갑자기 자유한국당을 찍는걸 결심한다거나 그런건 아닙니다. 문재인 지지를 철회한 20대 남성 중에서는 무당층으로 남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 현재의 20대 남성 중에서는, 다른거 다 떠나서 그냥 "반페미 하나만 보고 뽑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꽤 됩니다. 대북정책 모르겠고, 경제 모르겠다, 하지만 반페미니즘을 외치면 한 표를 줄 수 있다, 이런 생각이요. 언뜻 보기에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고, 정말 철없는 생각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대 남성 다수의 반페미니즘 정체성이 그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현재의 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을 외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목말라 있습니다. 물론 하태경이나 이준석처럼 이걸 빠르게 캐치하는 정치인이 있긴 하지만, 그 둘은 지금 당이 콩가루가 되어가는 상황이라 이게 정당 지지율로 연결되진 않을 겁니다. 상대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이걸 먼저 선점할 여유와 자원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둔감하고, 시야가 좁으며, 안일함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지지율 상승에 취해 오만해진거 같기도 합니다.

 

현 자한당 수뇌부의 상태를 고려할 때,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에서 이탈한 20대 남성의 마음을 잡으려는 노력을 딱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20대 남성의 분노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내년 선거에서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건, 그들을 담을 만한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당도 뚜렷하게 반페미니즘 슬로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20대 남성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결집하지 못할 것이고, 이들은 대북,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선거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민주당은 이것까지 계산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20대 남성은 고정 지지층이 아니기에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자유한국당을 안 찍게만 관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현재 핵심 지지층만 잘 결집시키면 내년 총선 승리까지는 자신 있다는 것이겠지요.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고, 차기 정권을 민주당이 재창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재인의 뒤를 이은 그 다음 좌파 정권은 더욱 과감하게 페미니즘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페미니즘에 불만을 가진 청년 남성들의 분노가 어디로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그 분노가 해소되지 못한 채 계속 쌓여 있게 되겠지요. 지금도 계기만 있으면 충분히 폭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 야당의 무능 때문에 그 시점이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쌓여가는 분노는 결국 폭발할 수 밖에 없으며, 비로소 그때가 되어서야 현재의 20대 남성은 결정적으로 판을 뒤집어 엎어 버리는 변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 변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10대 청소년 남성들입니다. 지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0대 청소년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성향은 20대 남성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육 현장이 페미니즘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고, 정말 불행하게도 사상과 정서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는 예민한 사춘기 시기에 지독한 젠더 갈등을 겪으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10년 뒤에 더 깊은 증오와 복수심을 품고 새로운 유권자 층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 정부 여당은 지금 자기들이 교육현장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이게 어떤 나비효과를 낳을지 전혀 눈치도 못채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들은 그들의 등에 무자비하게 칼을 꽂게 될 어린 친구들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고, 20대가 30대가 된 미래를 상상해 봅시다. 아마 지금 자유한국당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 다수는 물갈이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보수세력 자체는 그때까지 살아남아서 조직과 기반을 유지하긴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세력은 다음 총선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페미니즘 성향의 유권자들을 흡수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부에서부터 반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세력을 모으는 정치인이 나타날 가능성은, 보수 쪽이 민주당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당 자체가 지금보다 극단적인 성향을 띠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종류의 선거 연합이 만들어집니다. 십년뒤 우리는 어쩌면 20대와 30대 남성, 그리고 60대 이상이 지지하는 정당과, 그 사이에 낀 40대와 50대들이 주축이 되어 지지하는 정당 간의 대결 구도를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예 한국 정치의 지형이 재편되는 것이지요. 이게 현실화될지 아니면 제 추측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만약 보수정당이 양쪽 세대의 지지를 얻고 가운데 세대를 고립시키는 구도를 짤 수 있다면, 이는 민주당과 좌파진영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로 작용할 거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답답한 보수정당을 보면 아직도 정말 갈 길이 멀긴 합니다만, 아주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방향이 그들에게 반전의 활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